억울한 사람들

최만리 : '한자음의 중국발음화'를 반대한 것인데, '한글자체를 반대'한 것으로 매도된 사람.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후 1년도 못되어 사망했을까?? (그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작된 '동국정운'은 30년도 못되어 사실상 폐기되었다)

이귀 : 이사람도 한때는 광해군 지지자였다. 우군이 될 수도 있었던 이런 사람을 차버리고 '안티광해군'으로 만들어버린 광해군의 안목이 의심된다.

홍봉한, 혜경궁 : 요즘 떡사마에 의해 '사위(남편)죽인놈'으로 규탄받고 있는 부녀. 하지만 떡사마가 내세우는 근거는, '저들은 노론이기 때문에' 딱 하나다.

정순왕후 : 수렴청정때의 소행은 밉지만, 그것을 그의 인생전반에 소급해서는 안된다.

by 아롱쿠스 | 2008/06/27 09:57 | 트랙백 | 덧글(2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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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ommented by rezen at 2008/06/27 22:39
최만리가 단지 중국발음화에만 반대했다는건 주로 최만리 후손들이 주장하는 내용으로 압니다. 그는 중화와 오랑캐를 들먹이며 강도높게 한글장체 자체를 반대했었습니다.
Commented by 별이빛나는하늘 at 2008/07/27 08:48
최만리의 훈민정음 반대가 여러분야에서 조목조목 따지는 형태로 이루어진 건 맞죠...다만, 그게 그 시대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는 점들을 별로 생각들을 안하더군요. 세종도 최만리가 그렇게 떠난 후 집현전에서 그의 위치 (부제학이었던가요?)를 몇년간 비워둔 것으로 압니다. 그만큼 최만리는 세종에게 아끼는 신하였는데 말이죠...

솔직히 그 분께서 주장하시는 사도세자 음모론과 정조 독살설은...;; 좀 상황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보는 느낌이 적지 않아 있죠;; 사도세자 개인의 문제나 (노론이 편찬했으니 편견이 많이 섞였다고 해도) 정조의 빠른 노쇠 같은 건 아예 쏙 빼버린 느낌이에요.

정순왕후는 여러모로 불쌍합니다;; 전해지는 계비 간택때의 이야기 (목화라던가 아버지 이름이 쓰인 방석 같은 이야기) 가 그녀의 이야기라는 건 아예 무시 되는 듯....그리고 수렴청정때도 적어도 '원칙'을 지켰다는 점에서는 조금 너무 한 듯 합니다. 정조독살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으니 말이죠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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